영화 : 송곳니
개요 : 드라마
러닝타임 : 93분
개봉 : 2012.01.05
감독 : 지오르고스 란디모스
출연 : 크리스토스 스테르기오글루, 미셸발리
등급 : 청소년관람불가
사회 사상가 버거(1929~)와 루크만(1927~)은 저서 <실재의 사회적 구성>에서 무형이지만 실체를 가지고 영향을 미치는 개념들에 주목한다. 지식과 문화, 개인의 경험 등이 그것인데 이런 개념들은 곧 ‘실재’를 구축한다. 요약하자면 모든 사람들이 같은 객관적 실재를 인식하지 않는다고 보는 지식 사회학의 기본적인 원리라고 할 수 있다. 버거와 루크만은 이 개념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를 통해 어떻게 변해 가는가를 본다. 책의 1부인 ‘일생생활에서의 지식의 기초’에선 우리가 살아가는데 상식적으로 알아야 할 보편적 지식들이 있고, 그 외에도 내 위치와 상황에 따라서 알아야 할 특수한 지식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런 지식들은 한 가족이나 국가, 그 사회 문화와 같이 특정한 집단들의 합의에 의해 구축되고, 강화된다. 사회 속 개인들은 이렇게 구성된 다향한 실재들과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내면화하고 성장해 간다.
영화 <송곳니>에 등장하는 가정은 하나의 작은 사회와도 같다. 극 중 아버지는 자식들을 그의 방식대로 교육하는데, 가장 독특한 부분은 용어에 대한 부분이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들의 용어는 사회의 그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즉 동일한 기표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기의로 학습하기 때문에 결국 다른 기호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에서 통용되는 ‘강풍’은 가족 내에서 ‘고속도로’가 된다. 이와 같은 모습은 기호가 재생산되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다른 교육방식은 그의 자녀들로 하여금 바깥세상에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이다. 자녀들에게 바깥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 주는 것은 곧 외부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담장을 넘어온 고양이를 맹수로 인지하게끔 하고, 대문을 살짝 넘어간 물건을 주워올 때도, 아버지의 자동차를 통해서만 가져올 수 있는 모습들이 그것이다. 이런 사회적 환경 속에서 자란 자녀들의 실재는 일반인들의 보편적 실재와 다르게 된다. 일반인들이 공유하는, 그리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련의 내용들은 영화 속 자녀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외부에서 통용되는 내용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고, 이질감을 느낄 것이다. 그들의 ‘실재’는 지난 시간 동안 가정 내에서 구축되어왔던 것으로부터 구성된다.
한편 영화 속에서 다른 자녀들과 다르게 큰 딸은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다른 실재’를 경험하게 된다. 송곳니가 빠져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집 내부 실재’의 조건에서 두 실재의 충돌은 큰 딸의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결국 자신의 송곳니를 부수기에 이른다. 이는 현 체제에 대한 반발이자 저항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큰 딸은 송곳니를 부수고 집을 나서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그 이후 또 다른 한 걸음을 내딛지는 못한다. 아버지에 의해 구성된 또 하나의 사회에서 너무나 익숙해지고 세뇌당한 나머지, 새로운 실재에서의 행동 양식을 판단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큰 딸은 아버지의 차 트렁크에 숨는 판단을 하는데, 바깥 세상에 나가고자 했으나 결국 그 통로에 자신을 가두고 마는 결과를 맞는다. 이런 모습은 두 개의 다른 실재에서 방황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영화 <송곳니>는 단순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회의 실재를 공유하지 않는 한 가정에 대한 이야기‘ 이상의 메시지를 갖는다. 즉, 기호에 대한 무관심과 맹목적인 추구가 자신이 살고 있는 실재를 다른 사람에 의해 지배당하도록 하는 결과를 불러온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버그와 루크만이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는 학습되고 규범화된 사회의 실재의 기준에 맞추어 생활을 영위해 나간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영화 속처럼 비현실적인 조건이 아니라면 타인과 교류하며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데, 그 과정 속에서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영화 <송곳니> 속 아버지의 존재는 사회 주변에 숨어 우리를 ’보이지 않는 권력‘을 통해 통제하고자 할 수도 있다.
특히 현대 사회는 개개인의 다양한 지식,문화, 경험들이 컨텐츠화를 통해 대중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개념들에 대해서 의심을 가지고 고민해보지 않는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고하게 유도될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미디어는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공론의 장으로 여겨진다. 일반적으로는 미디어가 균형성과 객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이익집단에 의해 매체가 중립성을 잃게 되는 순간 <송곳니>에서 보여진 잠재적인 위협은 증폭된다. 따라서 <송곳니>를 통해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한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송곳니 (2012,지오르고스 란디모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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